<한부모 이주여성 역량강화>참여자 모집 안내

공지

한부모 이주여성 역량강화 지원사업

 

한부모 이주여성의 유쾌한 수다 시즌2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버텨온 시간 속에서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번 ‘한부모 이주여성의 유쾌한 수다 시즌2’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서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는 자리입니다.

함께 웃고, 나누고, 다시 힘을 얻는 시간.
이 여정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프로그램안내:

6월: 인사나누기

7~10월: <마주하기> 자신의 마음건강진단 및 자녀와의 관계진단.

7~10월: <이어가기> 함께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는 자조모임

9월: <함께하기> 자녀와의 즐거운 나들이 및 체험프로그램

 

신청안내:

신청방법: https://bit.ly/SingleMigrantMoms

※신청 후 전화로 접수 확인 바람

신청기한: 5월 29일(금)

문의: 051-711-5657

 

“유쾌한 수다(手多)방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46공지

<이주민과 함께X아름다운재단 이주민영유아 지원사례> “엄마 고마워요”- 굴곡진 삶을 버티게 하는 노래

지원사업

건강보험조차 없는 차가운 현실이지만

당하**의 행복한 노래가 멈추지 않길

서툴고 느린 이른둥이의 보이지 않는 벽

베트남 국적의 당하**은 ‘김**’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예정보다 두 달이나 앞서 태어난 이른둥이였지만, 다행히 신체 발달은 또래들 못지않았다. 하지만 한창 감정을 표현하고 활동량도 많아야 할 시기, 당하**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한부모 가정의 미등록 아동으로서 체류자격과 건강보험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다가, 홀로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당하**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가 없었다. 엄마가 저녁에 일하러 가고 나면, 아이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환한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영유아기 시절 매일 2~3시간씩 이어진 자극적인 미디어 노출은 당하**에게 필요한 다양한 감각과 사고력 발달을 막았다.

 

엄마 -두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당하**은 친구와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노는 시간이 많고, 집중력도 극히 낮으며, 과잉행동을 보여 통제가 어렵다고 했어요. 저녁에 일하러 나설 때마다 울면서 매달렸는데, 그런 아이를 떼어 낼 때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2025년 6월부터 찾기 시작한 아동발달센터에서는 당하**에게 언어발달 지연과 주의 집중력 저하, 상황 판단 및 대처 능력 부족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깨끗한 복장과 밝은 태도로 병원을 찾고,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듯한 당하**에게서 내면에 뚫려있는 발달의 구멍을 발견한 것이다.

당하** 앞에는 발달 지연이라는 장애 못지않은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바로 ‘미등록 아동’이라는 신분의 벽이다. 건강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는 아이는 독감이라도 걸려 링거를 맞고 검사를 받으면, 단번에 20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기본 5만 원이 훌쩍 넘는 진료비는 엄마의 하루치 일당을 고스란히 앗아갔다. 엄마가 감당해야 할 차가운 현실이었고, 높고 험하기만 한 문턱이었다.

별거와 부재, 홀로 짊어진 양육

엄마의 삶은 굴곡진 이주민의 서사를 그대로 품고 있다. 엄마는 2011년에 한국 남성과 결혼해서 2016년에 베트남에서 첫째 딸을 낳았다. 딸이 4개월쯤 되었을 때 딸을 여동생에게 맡기고 한국에 입국해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의 정신적 질환을 버틸 수 없었다.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법적으로는 이혼하지 못한 채 별거를 선택해야 했던 엄마는, 그사이 만난 베트남 출신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와의 사이에서 당하**을 낳았다. 그러나 당하**의 아빠마저 2022년 베트남으로 돌아간 뒤 양육 책임을 외면하면서, 엄마는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 베트남에 두고 온 아홉 살 딸의 양육비와 외할아버지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친구에게 빌린 200만 원까지, 엄마의 어깨에는 쉴 틈 없이 부채가 쌓여갔다.

엄마는 낮에는 당하**를 돌보고, 저녁 8시가 되면 노래방 청소와 식당 주방 보조 일을 하러 나간다. 매일 새벽 3시까지 주 7일을 꼬박 일하며 한 달 평균 250만 원을 벌지만, 그 돈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빠져나간다. 당하**의 보육비 40만 원, 일하러 간 동안 당하**을 돌봐주는 유학생에게 주는 돌봄비 60만 원, 베트남 딸 양육비 40만 원,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빼고 나면 식료품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식비가 모자라 가끔씩 돈을 빌려야 하는 날이면 엄마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9월부터 밀리기 시작한 전기세 고지서는 어느새 누적되어 엄마의 가슴을 짓눌렀다.

 

엄마 – 제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밤낮없이 일하느라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제가 부모 역할을 잘못해서 당하**의 발달이 늦고 사회성도 떨어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인터뷰 내내 엄마는 양육의 고통과 죄책감을 쏟아냈다. 밤에 일하니 늘 몸은 천근만근이고 잠도 부족하다. 아이를 돌보느라 개인 시간은커녕 집안일조차 하기 힘들 때도 많고, 아이를 친근하고 따듯하게 대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질 때면,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곤 한다고 엄마는 고백했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할 수 없다. 당하**이 옆에서 “엄마! 고마워요”하고 입버릇처럼 말할 때마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를 깨닫기 때문이다.

 

다시 흐르기 시작한 당하**의 시간

엄마와 당하**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주민과함께>와 <아름다운재단>의 손길이 닿았다. <이주민과함께>에서 수행한 ‘보육료 지원사업’에 당하**이 대상자가 되었고, 부모 교육을 실시하던 중 강사가 당하**의 발달 장애 상태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재차 문제를 확인했고, 이를 계기로 당하이민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교육청 바우처 16만 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 치료를 받았는데, 또래보다 언어발달이 많이 늦은 당하**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주민과함께>에서 의료비를 지원하여 치료 횟수를 늘리도록 했다.

 

엄마 – <이주민과함께>에서 재활센터를 찾아가 센터장에게 치료시간이 더 필요하다, 일주일에 두 번으로 치료시간도 늘리고 통합 치료도 받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어요. 덕분에 재활 치료가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어나고, 언어치료에다 감각통합치료도 받게 됐어요.

 

그러자 당하**에게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또렷하지 않던 발음이 살아나고, 어휘량도 늘었으며, 엄마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태도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재활 치료가 당하**의 발달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한 것 같아 엄마는 희망을 느낀다.

 

엄마 – 지금 가장 바라는 건 당하**이 어린이집 보육료와 병원비 걱정 없이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는 거예요. 나중에 학교에 갈 때 체류자격을 얻어서 당당하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등록이라는 신분 때문에 비자 신청 시 거액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현실에 엄마의 가슴은 다시금 철렁 내려앉지만, 아이를 한국에서 끝까지 키우고 싶다는 의지는 누구보다 단단하다. 혼자 내몰리듯 육아와 생계를 맡아오면서 삶에 대한 만족도도 낮고 스트레스도 많았던 엄마지만, 곁에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도 곧잘 부르고, 참새처럼 종알거리며 점점 성장해가는 당하**을 보면서 삶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꾸려 다짐한다. 이 작은 아이의 노래가 멈추지 않도록 손을 잡는 일은 한 가정을 구하는 일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내일의 희망이다.

11지원사업

미등록 이주아동 지원사업 지원자 신청현황

활동이야기

지원자 신청현황:

3월: 부산 아동19간, 산모1건 (총20건), 경남 아동 2건 접수

4월:부산 아동2건, 산모2건 (총4건), 경남 아동 9건 접수

지원사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활발한 신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필리핀, 중국, 베트남 공동체와 수많은 어린이집 원장님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문의와 접수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 경남신청자 2명 중에 한 명에게 월20만 원의 유치원 보육비, 다른 한명에게는 양육비 월 20만 원씩 9개월간 총 180만 원 지원 결정되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신청자들이 많아 아직 심사 단계에 있지만, 많은 가정에게 희망적인 결과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복잡한 서류 절차 속에서도 보육기관 원장님, 원감님, 담임 선생님, 그리고 공동체 리더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협력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이주민 가정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을 함께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주아동과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소중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16활동이야기

이주배경주민의 사회적 통합 확대를 위한 소셜리빙랩

활동이야기

(사)이주민과 함께는 2026년부터 3개년 간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이주배경주민의 사회적 통합 확대를 위한 소셜리빙랩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1차년도인 올해의 목표는 이주민과 선주민의 참여와 소통, 상호이해를 통해 부산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의 다양한 의제를 발굴하는 것입니다.

3월에는 앞으로 함께 할 이주민 및 선주민 핵심참여자 23분을 모집했습니다. 4월부터 6월까지는 소셜리빙랩이 무엇인지, 1년 내내 지속될 모임에서 어떻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조율할지, 더 많은 이주민과 선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배우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하는 좌충우돌 리빙랩을 기대해주세요~

 

9활동이야기

2026년 <이주민공공의료통역전문교육> 교육생모집

공지

교육기간 : 2026년 6월 8일(월)~ 6월 25일(목)
교육시간 : 매주 월~금 / 10:00~15:00 (총 60시간)
교육대상 : 이중언어 활용가능한 이주민
(TOPIK 4급 이상 또는 통번역 경력 3년 이상)
교육방식 : 온라인 ZOOM (비대면)
교육내용 : 교육프로그램참조
접수마감 : 5월 22일 (금) 18:00
접수방법 : 이메일 접수 ▶ somi3438@daum.net
(※이메일 전송 후 전화로 접수 확인 바람)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 이력서, 자기소개서(홈페이지 http://somi.or.kr 에서 다운로드)
신분증 사본 및 자격•경력 증빙서류
선발방법 : 1차 서류심사 > 2차 면접심사(서류심사 합격자에 한함) > 최종선발
교육특전 : 온라인교육 -①-> 시험(필기.실기) -②-> 합격 -③-> 이수증 -④-> 실습(30시간), 자원봉사(10시간) -⑤-> 수료증 및 부산시 의료통역활동가 등록문의전화 : 051-711-5657 담당 김나현

 

 

참가신청서.이력서.자기소개서 참가신청서.이력서.자기소개서

149공지이주민공공의료통역전문교육

<이주민과 함께X아름다운재단 이주민영유아 지원사례> 베트남 엄마의 텅 빈 주머니와 꽉 찬 사랑,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

지원사업

세상은 1.34kg이라는 숫자가 너무 작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 무게에 자신의 온 삶을 걸고 버텨냈습니다.

아기의 위태로운 첫 호흡과 이어지는 병원 생활
2024년 9월 4일, 세상의 빛을 본 누엔****의 첫 호흡은 위태로웠다. 예정일보다 훨씬 이른 34주 만에 태어난 아기의 몸무게는 고작 1.34kg. 호흡이 비정상인 데다 신생아 패혈증과 상세불명의 혈소판감소증 그리고 온몸에 퍼진 청색증에 열까지 끓었다. 탄생을 축복받아야 할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아기는 우유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결국, 장 수술과 급성장염이라는 합병증까지 겹쳐서 세 곳의 병원을 숨 가쁘게 옮겨 다녀야 했다. 건강보험이 없는 미등록인 아기에게 청구된 총진료비는 무려 1억 1,200만 원. 그것은 평범한 노동자인 엄마가 일생을 벌어도 모으기 힘든 거대한 성벽 같았다.

엄마 – 처음에 창원 소재 대학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는데, 장에 문제가 있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가 너무 작은 데다가, 수술비용까지 생각하면 정말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 후 급성장염으로 양산 소재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는데, 당시 저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의사 선생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합병증이 발생했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부산 소재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요. 보험이 없으니 병원비가 1억 원이 넘게 나왔는데,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다행히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7천만 원을 지원받았고, 300만 원의 진료비 지원사업 덕분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엄마는 아이가 아픈 것이 임신 중에 제대로 먹지 못한 본인 탓인 것만 같아 괴로울 때도 있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모아야 했기 때문에 만삭 때까지 자동차 공장에서 100시간 넘게 초과근무를 하며 버텼던 시간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된 것은 아닐까 자책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15개월이 된 누엔****는 건강을 회복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전히 장 흡수력이 약해 또래보다 작지만, 엄마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감사한 기적이다.

엄마 – 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작으니까 유전자 검사도 해보자고 했는데, 이미 병원비로 수천만 원을 쓴 뒤라 더는 돈이 없어서 못 한다고 했어요. 그땐 정말 속상했어요. 그래도 이제는 병원에서 ‘괜찮으니 안 와도 된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이가 순해서 잠을 못 자도, 여전히 건강을 조심해야 하지만 저는 힘들지 않아요. 그저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엇갈린 엄마 아빠의 인연과 홀로 선 엄마
엄마는 베트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2년 결혼비자로 입국해 11년째 한국에 살고 있지만, 2016년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별거를 시작하면서 엄마의 법적 보호망은 사라졌다. 미등록 신분이 된 엄마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계속 살고 싶었다. 그러다 베트남 국적의 아빠를 만났고 단란한 가정을 꿈꿨지만, 아빠는 임신 사실조차 모른 채 베트남으로 잠적해버렸다. 연락이 끊긴 아빠를 원망할 시간조차 엄마에게는 없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심장병 치료비까지 송금해야 했기 때문이다. 창원 공장에서 한 달에 330만 원을 벌어서 고향에 보내고 출산을 위해 차곡차곡 모았지만,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직장을 잃었고, 모아둔 퇴직금 600만 원과 저축해온 2,800만 원은 고스란히 병원비로 들어갔다.

엄마 – 아직 창원의 병원에는 1,178만 원 미수금이 남아서 매달 20만 원씩 갚아나가고 있어요. 어차피 중환자실에는 보호자가 같이 있을 수 없으니 병원비를 벌기 위해 농촌에서 일용직 일을 하고, 일없는 날에 아이를 보러 병원에 왔어요. 지금은 동네에 있는 병원 식당에서 하루 4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100만 원 남짓 받는데, 어린이집 보육료 50만 원과 미수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없어요. 아끼고 아끼면서 견디고 있어요. 이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5시에 와요. 그래서 오후 5시까지 일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어요.

엄마와 누엔****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단둘이 산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언니가 유일한 통역 도우미일 뿐, 경제적으로 기댈 곳은 전혀 없다. 급한 마음에 주위 사람에게 빌린 130만 원 빚이 있지만, 수도와 전기가 끊길까 봐 공과금부터 내다보니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누엔****가 배 안에 있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다시 일어나 열심히 일해서 하나씩 갚아나갈 생각이다.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보며 엄마는 신발끈을 동여맨다.

따듯한 지원이 이방인에서 이웃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엄마를 일으켜 세운 것은 주변의 따듯한 손길들이었다. 민간재단인 <위프렌즈>와 <세이브더칠드런>, <이주민과함께> 같은 기관들이 나선 덕분에 1억 원이 넘는 병원비를 100% 수가 전환하여 5천9백만 원으로 낮출 수 있었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에 아이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카톨릭신문사에서도 모금 활동을 벌여 기부금 3,950만 원을 모았는데, 덕택에 진료를 받고 남은 기부금으로 보육료도 내고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도 퇴원할 때 후원금을 주었고, 아기 옷과 분유 후원도 이어졌다.
<이주민과함께>에서는 지원한 긴급 생계비 50만 원을 받아든 엄마는 누엔****의 다음 달 보육료를 해결할 수 있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늘 아이를 먼저 챙기는 엄마다.

엄마 –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늘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곳에서 도움 주시는 것을 겪고 나니 이제는 제 생각도 좀 달라졌어요. 무척 감사하고 사회에 나갈 힘을 얻어요. 한 번씩은 제가 부모 역할을 잘 못 해서 아이가 뒤처지거나 힘들어질까 봐 걱정도 되지만요. 이제 병원 치료도 끝났고, 혹시나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절에서 운영하는 의료공제 같은 것도 가입했어요.

엄마는 한국이 더 이상 차가운 이방인의 땅이 아님을 느낀다. 비록 아이의 성장을 위해 베트남어로 육아 정보를 검색하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공부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지만, 엄마는 이제 아이와 함께 미래를 꿈꾸며 한발씩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당장은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더 자라면 부모님이 계신 본국으로 돌아갈 결심도 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이 땅에서 아이의 건강을 지키며 잘 키우는 것이 엄마의 유일하고도 간절한 계획이다.

12지원사업

<이주민과 함께X아름다운재단 이주민영유아 지원사례>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틴 시련과 1.5kg의 기적

지원사업

경찰이 들이닥친 병원에서 8개월 미숙아로 태어난 끼*은
주변의 도움으로 따듯한 엄마 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 끼*을 바라볼 때면 엄마는 무거운 시련도 잊고 웃음 짓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합니다.

끼*이 마주한 세상과 생명의 기록
끼*과 끼*의 엄마를 만나러 간 날, 밖에는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렸다. 끼*의 엄마가 머물고 있다는 경상남도 함안군의 공장 기숙사 주소지를 들고 논밭 사이 시골길을 달렸지만, 도착한 곳에는 공장도 기숙사도 없이 드문드문 작은 집들만 보였다. 여기가 아닌가? 당황하던 차에 주소지를 알려준 사장님을 만났고, 그를 따라 더 외지고 깊숙한 곳에 있는 단층집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미등록자 신분이라 혹시 모를 위험을 염려한 사장님이 일부러 틀린 주소지를 알려준 것이었다. 어린 끼*과 신분이 위태로운 엄마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현관문이 열리자 아직 백일도 지나지 않은 끼*을 안은 엄마가 활짝 웃으며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아기와 산모가 머무는 곳답게 뜨끈뜨끈한 방 한가운데에 끼*의 이부자리가 있었다. 자리에 앉자 불과 몇 달 전, 긴박했던 끼*의 출생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끼*은 2025년 10월, 임신 31주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체중도 고작 1.5kg밖에 되지 않아, 세상에 나오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43일을 버텨야 했다. 갑자기 산통이 시작되었을 때는 하필 추석 연휴였기 때문에 산모를 받아줄 병원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 두 군데를 돌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 절박했던 순간을 엄마와 사장님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 – 삼*병원 응급실에서도 거절당했어요. 다행히 진주의 한 병원에서 진료만이라도 해주겠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그 자리에서 진통이 시작된 거예요. 그대로 아기를 낳았는데, 너무 작게 태어나서 곧장 부산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43일 동안 인큐베이터 생활을 했어요.

끼*의 아빠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돈을 벌기 위해 3년 전 태국에서 입국했다. 참외농장에서 함께 일하며 동거했으나, 엄마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다른 지역으로 일터를 옮겼고, 그 뒤로 엄마와의 연락을 끊었다. 태국에서 사업 관계로 발이 넓은 사장님이 가끔 아빠와 통화를 하는데, 사장님이 끼*의 소식을 전해줬지만, 끝내 아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사장님이 아빠를 대신해 아기 분유도 주문해주고, 산모가 잘 먹어야 한다며 고기와 반찬도 챙겨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산모에게 들이닥친 경찰과 벼랑 끝에 선 생명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사장님은 노산인데다 아빠도 없고 미등록 신분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들 것이라며 아기 낳는 것을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눈물로 호소하면서 끝까지 작은 생명을 지켰다. 그 간절한 사랑의 힘 때문이었을까. 보통 아기 체중의 절반밖에 안 되는 끼*의 생명력은 놀라울 만큼 야물었다. 산부인과로 엄마를 잡기 위해 들이닥친 경찰들도 차마 끼*을 어쩌지 못했고, 43일간 인큐베이터 안에서도 잘 견뎌냈고, 지금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장님은 출산을 앞두고 구급차에 실려 온 산모를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에 혀를 끌끌 찼다.

사장님 – 어느 병원에서 신고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불법체류자 있다고 신고를 한 거예요. 참 너무 하지요. 산모를 잡아가면 핏덩이같은 아기는 어떻게 하라고. 출동한 경찰들도 황당했는지 쳐다보더니만 그냥 가데요. 애 낳고 있는데 별수 있었겠습니꺼.

끼*이 무사히 자라서 퇴원한 것은 다행이지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미등록체류자 신분인 엄마에게는 일반인이 상상조차 힘든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진주**병원의 출산비가 500만 원, *병원에서의 치료비와 입원비 등 총액이 1억 원을 넘었으니, 엄마로서는 평생 만져본 적도 없는 큰돈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건강보험료 100% 수가로 해서 3,500만 원으로 금액이 낮춰진 것이다. 거기다 의료비 지원과 병원의 모금, 사장님의 도움이 있었고, 엄마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까지 보태어 병원비를 지불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500만 원의 미수금이 남은 상태이다.

엄마 – 인큐베이터 비용만 하루에 100만 원 정도였어요. 그래도 끼*이 건강하게 퇴원해서 정말 기뻐요. <이주민과함께>의 의료비 지원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다시 일어설 준비, 꿀단지처럼 숨겨둔 아기수첩의 희망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엄마는 끼*만 보면 옅은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끼*은 토닥이는 엄마 손길에 사르르 잠이 들었다. 평온해 보이지만 엄마의 어깨에는 여전히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다.
엄마는 태국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 결혼했지만, 23살, 26살 두 딸을 데리고 이혼했다. 친정아버지가 농장을 차리느라 대출을 받았는데, 그때 진 빚과 전남편의 빚까지 떠안아야 했다. 결국, 두 딸을 친정 일을 돕게 하고, 여동생과 함께 한국행을 택했다. 3년 전에 관광비자로 단체관광을 위장해 입국했는데, 여동생은 현재 해남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엄마 – 태국은 남자 일당도 기껏해야 1만 원 정도예요. 그런데 한국의 일당은 열 배가 넘어요. 그러니 위험을 감수하고 이렇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거예요. 나도 빚만 갚으면 태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지요. 끼*이 6개월 되면 태국에 있는 친정에 보내고, 다시 과일 농장으로 갈 겁니다.

엄마는 과일 농장에서 멜론, 참외, 수박 농사를 했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끼*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고 석 달 뒤에는 헤어질 것이 마음 아프지만, 엄마는 애써 웃는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당장은 끼*의 내과, 안과 병원 진료도 받아야 하고, 엄마의 B형 간염 때문에 그 검사도 받아야 한다. 자신의 B형 간염 검사도 받고, 달리기에 앞서 신발 끈을 단단히 고쳐매듯 앞으로 건강도 챙길 계획이다.
끼*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물으니, 엄마는 구석진 이불 밑에서 꽁꽁 감춰둔 꿀단지라도 꺼내듯이 아기 수첩을 가져와 펼쳐 보였다. 마침 가까이에 보건소가 있으니 임시번호를 받아서 아이에게 필요한 예방접종도 받으라고 안내를 하니, 엄마는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 사장님이 안도감과 고마움 가득한 미소로 길을 알려주고, 엄마도 문 앞까지 나와 환하게 웃으며 배웅해주었다. 마당에는 초록빛을 띈 풀들이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납작 업드려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낸 풀들이 봄이 오면 파릇파릇하게 일어나 제 역할을 하듯, 시련의 계절을 지나고 있는 끼*과 엄마에게도 곧 따스한 햇살이 비치길 바란다. 1.5kg의 작은 몸으로 세상을 이겨낸 끼*의 생명력이 희망찬 봄을 불러오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21지원사업

이주민과 함께 소셜 리빙랩 핵심참여자 모집

이주민과 함께 소셜 리빙랩

<이주민과 함께>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이주배경 주민의 사회적 통합 확대를 위한

소셜 리빙랩 프로젝트’를시작했습니다.

이주민 인구 270만 시대,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에 잘 정착하여 주민으로서 권리를 누리며

잘 살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함께 모여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이 작은 실험에 동참할 시민 연구자를 찾고 있습니다.

핵심참여자는 4월과 5월에 진행되는 리빙랩 교육(4/18(토) 오후 2시 확정), 퍼실리테이터 교육(2회)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고, 리더십 교육(3회)에 최소한 1회 이상 참여해야 합니다.

6월부터 12월까지 월 평균 2회(총 12회 내외) 진행될 예정인 라운드테이블과 워크숍에도

최소한 5회 이상 참여해야 합니다.

신청 시 일정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책 만들기와 마을공동체 탐방, 영상 컨텐츠 제작은

희망하시는 경우 참여하시면 됩니다.

사업 소개 :  부산사랑의열매, 이주민 사회 통합 사업에 5억원 지원

참가 신청하기 : 소셜 리빙랩 핵심참여자 모집

286이주민과 함께 소셜 리빙랩

총회를 개최하며

활동이야기

올해 이주민과 함께 30주년을 맞이하는 슬로건은 ‘이주민이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회‘입니다.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군부 쿠테타가 일어 났습니다. 부산역 광장에서 미얀마 민주항쟁 연대투쟁을 참가했을 때, 광주항쟁을 연대의 말로 건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나온 과거 같고, 바다 건너 타국의 일이었으나, 2024년 12월 3일 계엄선포로 우리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는 마치 기후재난 후 마을을 정돈하듯이, 정치적 재난 이후 사회문제나 마음을 하나하나 정돈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는 듯 합니다. 우리 내걸은 ‘이주민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회’를 떠올리며, 이 사회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시간들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계엄에 맞서고,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깨닫고, 건강한 시민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참여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몸으로 깨달아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함께 사는 이주민들도 그 과정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하였을 것입니다.

지난해 11월엔 무슬림 이주민인 조란 맘다니가 뉴욕시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여러 사회권, 공공적 ,재분배정책들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이주민의 체류자격에 따라 생존의 기본권인 건강권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과 달리, 뉴욕시는 1986년부터 응급상황이나 분만시에는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조란 맘다니의 여러 진보적인 정책은 어떻게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무슬림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시민적 주체성으로 현재의 미국 사회를 분석하고 진단하며 목소리를 내어서가 아닐까? 미국사회에서 무슬림, 이주민이라는 차별의 주홍글씨를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권리와 누구나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긍정과 희망의 생각들로 만들어 냈다 생각합니다. 그것을 크게 목소리 내고, 오래 설득하면서, 사람들이 동의하고 함께 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를 더 평등하고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은 이주민으로 인해서 심화되고 두드러지는 것이 아닌, 이주민들의 목소리와 활동들이 보다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민과 함께는 목소리를 모아 크게 내고 있습니다. 링크 심포지움이나 이주민건강권, 보육권 토론회 등에서 이주민활동가들이 역량을 십분 발휘하며 빛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이름난 링크 공공의료통역과정에선 올해도 예순한명의 이주민이 수료했습니다. 수료자 중 십여명이 이주민통번역활동가들은 매달 이주민진료소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으며, 링크통번역협동조합과 함께그린부산, 이주민 포럼, 이주청소년 모임에서 많은 이주민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는 노동·의료·행정 등 부산시에서 살기 위한 이주민 지원을 어느 기관보다 성의있게 해 오고 있고, 이주민 영유아의 보육료 지원에 애쓰고 조례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주민과 함께 또한, 장애이주민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이주아동건강권, 청소년지원, 한부모이주여성 등 한국사회에서 한 줌의 그늘에도 볕이 들고 싹을 틔우기 위한 활동하고 있습니다. 총회자료집을 보시며 ”이렇게 많은 일을 !!!“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또한, 올해 30주년을 맞아 이주민과 함께는 지역사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우리의 외침과 활동과 정책과 사업이 이주민과 지역민이 사는 생활과 현장에 녹아내려, 지역에서 어떤 가치와 모양으로 만들어질지 함께 설레며 관심을 가지고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올해도 건강한 시민의 힘으로, 이주민의 목소리를 높여 나가, 더 나은 사회로 모두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2026. 2. 12. 이사장 조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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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항쟁 5주년 부산 연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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