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 라메드

활동이야기

외근 나가는 길 지하철 안, 그다지 붐비지 않은 낮 시간인지라 대부분 승객들은 앉아 있었고 여남은 명이 드문드문 서있는 사이로 핑크색 아기띠를 맨 여성이 들어섰습니다. 일순간 시선이 아기에게 꽂히며 사람들 속에서 미소가 번졌습니다. 두 명이 용수철처럼 일어섰습니다. 자리를 양보하려는 몸짓이었죠. 대중교통에서 아기를 마주치는 일이 좀처럼 없는 요즘이라 아기는 더욱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어요. 저출생을 중대한 사회위기로 삼고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을 슬로건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국. 그런데 사실 이 나라는 그 땅에서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품지 못하는 곳이랍니다.

혜진이가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혜진이는 ‘있지만 없는 아이’입니다. 4개월 전, 미등록 이주아동 의료비지원사업을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엄마의 응급 상황에서 이른둥이로 태어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했던 혜진이는 놀랍도록 빠르게 건강을 회복해 기쁨을 주었습니다. 아기가 조금 자라면서 혜진이 부모는 아기를 할머니에게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임신과 출산 기간 동안 돈을 벌지 못한데다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빚도 많이 져서 도리가 없다는 말을 하는 혜진엄마 얼굴에 눈물이 번집니다. 부모가 미등록이니 직접 데려다 줄 수 없고 아이를 보러 갈 수도 없으니 이별의 시간이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알지 못합니다.
부모의 국적이 무엇이든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한국인으로 출생등록을 할 수 있다면, 최소한 영주권이라도 주어진다면, 육아휴직을 할 수 있고 양육비와 보육료를 지원받으며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다면 홀로 떠나보내지 않아도 될 텐데요. 이주아동 보육료 지원을 제도화하기 위해 뛰어나는 요즘, 마음이 더욱 바빠집니다.
혜진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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