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료상담 이야기

활동이야기

아이잔 의료팀장

 

지난 6월, 부산에 거주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여성 A분이 새벽에 혼자 자택에서 출산했다. 나는 A와 신생아 건강이 걱정되어, 긴급하게 협력병원으로 갔고 너무도 다행히도 A와 아기는 건강상 문제가 없었다. A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어서, 의료팀에서는 한 복지재단을 통해 지원금 300만원을 받아 생계비와 의료비 지원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A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빨리 119 불러주세요. 아이가 코피 흘리고 숨을 못 쉬어요” A가 외쳤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119가 도착했고, 아기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119와 전화 통역 중에 경찰에서도 연락이 왔다. 119에서 아동학대 의심으로 신고한 모양이었다.

토요일이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당직 의사는 신생아에게 코피가 난다는 증상은 흔하지 않다며 외상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CT 검사를 찍었다.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다. 필요한 검사와 아이의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입원 수속 시 건강보험이 없어서 병원비가 많이 발생한다는 안내 받고 보증금 200만원 내야 입원 허가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진행 중인 ‘미등록 이주 아동 의료비 지원사업’ 예산으로 200만원 냈다. 밤 11시가 돼서야 하루가 끝났다.

A는 건강보험이 없다는 것 말고, 또 다른 어려움도 있었다. 아기는 출생신고를 못한 상태였다. 집에서 혼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보통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출생 증명서를 받을 수 없었다. A가 본국 대사관에 여러 번 문의했지만, 병원에서 서류를 떼오라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부산에 해당 국가 영사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아기가 입원 중이고 출생신고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영사관에서는 출생 당시 진료받은 병원에서 진료 확인서를 번역&공증&아포스티유 해서 제출하면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도움을 받아 진행 중이다.

아기가 입원하는 동안 원무과 직원들은 물론이고 병원 관계자들까지 병원비 문제로 하루 15개 이상 연락이 왔다. 원무과로부터 이주민과함께가 병원비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까지 들어 말싸움도 했다. 결국 ‘미등록 이주 아동 의료비 지원사업’의 남은 마지막 예산을 보냈다. 우리 지원금이 모자라 본인부담금이 발생하여 이를 내지 못해 병원으로부터 여권 압수를 당했다. 일주일 뒤 외래진료때 남은 병원비를 갚는다는 조건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도 받아야 했다. 경찰서와 구청에서도 조사가 진행되었다. 퇴원한 지 며칠 뒤, 짐을 싸서 경찰청에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경찰청에서 아동학대 혐의가 없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미등록 체류 중이라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이송해야 한다고 했다. A는 치료가 끝나지 않는 신생아와 보호소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냐고 항의를 했다. 경찰관이 아기와 분리하겠다고 협박하고서는 강제로 부산 출입국외국인청에 데려갔다. 이 사실을 듣고 곧바로 출입국외국인청에 달려갔다. 출입국외국인청에 한 달 된 신생아는 대학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출생신고조차 안 된 상태이고, 앞으로 항경련제 치료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보호일시해제청구서와 신원보증서를 작성해서 A와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다음날 3개월 유효한 체류허가서가 나왔다. A와 아기는 돌봄이 필요했다. 수소문을 통해 쉼터를 찾았다. 충분한 돌봄과 치료를 받은 뒤 건강하고 안전한 상태에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계획이다.

장기 상담이라는 것을 파악한 순간부터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상담 때마다 나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상담자를 넘어 보호자 역할도 하게 된다. 정말 쉽지는 않다. 밤과 낮, 쉬는 날 없이 언제든지 연락을 받고 대응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무 대책 없이 위험하게 자택에서 출산하고, 아기 잘 돌보지 못한 A에게도 원망이 컸다. 상담하면서 A를 이해하고자 했다. A가 위기 상황에 빠진다는 것은, 결국 A만 잘못과 책임일까?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짐작할 수는 있었다. 미혼모로 그 나라의 사회적 비난이 심한 탓에,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낯선 나라로 도망하기로 한 A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상담이 너무 힘든 순간에는 활동가의 길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느낀다. 동료 활동가들이 부딪치는 어려움을 하나, 하나 헤쳐가면서 성숙해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고 말했듯이 나는 어쨌든 간에 늘 최선을 다해서 활동가의 역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 오늘도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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