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활동가의 다짐

활동이야기

기수하 활동가

코로나19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바꿔 놨습니다. 이로 인해 나의 개인 생활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코로나 펜데믹 전까지는 여행업계에서 활동하였던 나는, 여행사의 폐업으로 공공의료통역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육은 나와 이주민과 함께의 연줄이 되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의료통역활동가로 병원을 오가며 중국 이주민 환자들과 의료진들의 의사소통을 도우며 활동하다 보니 내가 위축되었던 이주민 환자들에게 보호자와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우울 증상이 있는 환자의 속마음에 불안과 근심을 듣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말들이 내 자신에게도 위로가 되었던 계기로 가족 상담 대학원으로 진학까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사태가 발생하여 이주민들의 주거환경개선 행진을 따라가 많은 참여자들과 함께 구호만 외쳤을 뿐인데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차별금지법 제정 행진과 미얀마민주항쟁 행진 등 참여했는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받았던 교육 중 ‘나와 직접 연관이 없으면 나서지 말라’는 것을 깨뜨려서 마음의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사회적 책임감 같은 녀석이 충족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육아휴직 대체인력으로 이주민과 함께 부설기관-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근무한 15개월 동안 상담하면서 들었던 많은 이주민들의 스토리가 내 인생의 교차로에서 방향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의 하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인주민수가 225만 명이 넘은 한국사회는 다문화사회 들어서지만 실제로 이주민들에 대한 형형색색의 차별과 불평등 처우, 특히 미등록이주민들의 건강권, 교육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등 소리를 함께 내고 싶어 다문화가족센터 일을 접어두고 유턴하여 이주민과 함께로 합류하였습니다. 차별이 없는 세상,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함께 만들어가는 이주민과 함께 단체 속에 나도 들어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럽습니다. 멀고 쉽지 않은 길인 줄 알고 있지만 내 앞의 선배들처럼 내가 맡고 있는 작은 역할부터 차츰차츰 하다 보면 조금씩 개선되리라 굳게 믿고 앞만 보고 걸어가기로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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