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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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경(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센터장)

 

다니엘(가명)은 출근 첫날 왼쪽 집게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 한참 피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라는 박노해의 시 “손무덤”과 달리 그날 다니엘은 반장의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봉합수술을 받았다.

다니엘은 ‘코리안드림’과 함께 노동자가 되어 한국에 왔다. 그러나 그가 배정받은 회사에서 두 달 동안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다니엘은 회사를 옮기고 싶었지만, 사장은 상황이 언제 좋아질지 모르니 “기다려”라고 했다. 다니엘은 마음대로 회사를 옮길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이기에, 생계를 위해 며칠만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으로 옆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다.

옆 공장에 첫 출근 날 반장은 “기계가 조금 이상하니 조심해서 일해”라는 말로 안전교육을 끝내고 다니엘을 곧바로 작업에 투입 시켰다. 그렇게 아르바이트 첫날, 일을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그의 왼쪽 집게손가락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 공장바닥의 철제 폐기물 사이로 굴러떨어졌다. 다니엘은 순간 정신이 아찔했지만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폐기물 속에 팔딱거리며 날뛰는 손가락을 찾아야 했다. 왼쪽 손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몸에서 분리된 손가락을 찾아 폐기물에서 묻어 나온 쇳가루와 먼지를 입으로 후후 불어 털어냈다. 그리고 절단된 손가락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반장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일터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3,588건의 산재상담을 접수했다. 다니엘처럼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손목이나 한쪽 팔이 잘리기도 했다. 또 건설현장 터널 작업 중 철판이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되기도 했고, 용접작업 중 산소통 폭발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기도 했으며, 냉동창고에서 하루에 16시간 일하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어떤 노동자는 작업 중 기계에 끼여서, 화학약품에 질식하여,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화재로, 기숙사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건설현장에 추락하여 죽었다. 이렇듯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는 매년 6∼7명의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 상담을 접수했다. 지난 11년간 75명의 이주노동자가 한 줌 재가 되어 그토록 그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편, 신체가 훼손되어 앞으로 가족을 어떻게 부양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하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신적 안전을 위협하는 일터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는 산재와 직업병으로 인한 신체적 안전문제도 심각하지만, 정신적·사회적 안전에도 취약하다. 이주노동자의 정신안전을 침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사업장변경 제한이다.

고용허가제가 고질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사업주들을 위한 제도이기에,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 자유를 막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 제한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를 초래하고 있다. 근로계약과 다른 불법적인 업무지시에 문제를 제기하면 폭언과 괴롭힘이 따라오고, 최대 주 5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지만 휴게시간도 휴일도 없이 일을 시켜 쉬고 싶다고 하면 “일하기 싫으면 니네 나라가!”라는 협박이 따라왔다. 월급이 적고 그마저 제때 지급되지 않아 회사를 옮기고 싶다고 하면 형언할 수 없는 욕설과 폭언 그리고 “출입국에 신고하겠다”라는 협박이 돌아왔다.

어느 일요일 필리핀 노동자 6명이 새벽 6시에 센터에 찾아왔다. 그들이 새벽부터 센터에 와서 기다린 것은 월급 때문이었다. 그들의 일터는 “too many Cold”와 “too many C발!”이 난무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건강을 위협한 “too many C발”을 문제 삼지 않았고, 그저 밀린 월급(각각 500만원∼1100만원)을 받게 해달라고 했다.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일터는 정신적 안전이 위협당할 수준의 직장내 괴롭힘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는 매년 1000건 이상의 사업장변경 상담이 접수하고 있다.

 

사회적 안전을 위협하는 일터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도 일터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다양한 차별로 인해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그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고용허가제 노동자이기 때문에, 이주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에, 임신하였기 때문에,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음에도 원래부터 한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등록체류자이기 때문에 등 다양한 이유로 직장 내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지만 가장 월급을 적게 받고 있으며,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임신하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고, 법으로 보장된 산전검사를 받기 위해 휴가를 요구하면 “왜 허락도 안 받고 임신했냐?”라는 물음이 돌아왔고, 힘들게 버텨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고자 하면 “우리 회사는 그런 것 없다!” “임신해서 이런 것 요구할 줄 알았다면 너를 고용하지 않았을 거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심지어 최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주최하는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구분 적용 세미나’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해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차별)적용하고 사적 계약과 단기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공론화되었다. 나경원 의원은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외국인 고용을 활성화하고 더 많은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획일적, 일률적 최저임금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면 취약한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이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여 국민경제와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최저임금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일부 사업주들의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한민국은 인종차별 국가로 국제사회에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안전한 일터에서 生生至樂하기

가끔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손 사진을 받는다. 손가락이 곱게 절단된 사진을 보낸 노동자들에게는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들이 보낸 손가락 대부분은 의깨지고 뭉개져 하얀 뼈와 검게 죽은 살, 그 사이를 날카로운 바늘로 고정하여 피를 흘리는 손가락들이다. 그런 손가락을 볼 때면 멀쩡한 내 손가락마저 저리고 아프다. 그런 날 나는 손가락을 유심히 내려다보며, 손가락이 내 몸에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자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리게 된다.

이주노동자의 일터가 산업재해로부터 안전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서 해방되어 이주노동자의 정신안전이 보장되고 차별 없는 공간이길 바란다. 이주노동자의 손가락도, 생명도, 그들이 코리안드림도 온전한 하나로 함께 생생지락(生生至樂)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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