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아동들의 위기 환경 극복을 위한 성장 지원사업

활동이야기

12월 19일과 22일에 걸쳐 이주아동 양육자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김문정(부경대학교 부경아동가족상담소) 부소장님을 강사로 양육태도를 테스트한 후 1대1로 코칭하였습니다. 영어,베트남어, 중국어 통역으로 총 13가정 25명이 이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이주아동 양육자들은 궁금해도 언어소통이 안 돼서 검사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교육에 양육자의 양육태도를 검사를 실시하였고 향후 올바른 자녀양육 맞춤 지도를 실시하였습니다. 양육자 교육은 아동의 발달지체 및 문제행동, 건강상태 등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선에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합니다. 지난 교육을 통해 발견된 두 아동은 언어치료와 행동교정 치료를 시작하였고 한 아동은 사시교정 수술을 했습니다.

아동의 발달지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느끼고 있어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대응하지 못하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특히 미등록 양육자는 경제적 부담에 신분노출의 걱정으로 진단이나 치료를 하지 않고 있어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70활동이야기

2024 세계이주노동자의 날 기자회견 발언문

활동이야기

안전하게 일할 권리! 자유롭게 이직할 권리!

같은 사람 같은 노동자, 권리는 모두에게!

 

(사) 이주민과함께 김아이잔 팀장

 

 

안녕하세요. 저는 이주민 활동가 김아이잔입니다. 오늘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이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의 인권 현실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1990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은 모든 이주민이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거나 자유권의 침해를 받지 않아야 하며, 국민과 동일하게 사회보장서비스를 받아야 하며, 공정한 법 집행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4년에도, 한국에 사는 많은 이주민들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을 차별하는 법과 제도, 인종차별적인 편견과 이주민 혐오 때문입니다. 이주민들은 건강권, 정보 접근권, 노동권의 침해, 낙인과 차별 앞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헐값에 들여온 기계처럼 다루는 사업주와 노예처럼 구속하는 고용허가제 때문입니다.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곳들이고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만지는 기계, 화학물질, 위험요소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언어로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은 엄격한 근로감독을 실시하며,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책임자는 엄중히 처벌해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사업주의 고용할 권한만 인정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합니다.

 

태어난 것이 ‘불법’이 되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미등록 이주아동들입니다. 한국사회가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나 자란 곳에서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아이들입니다. 미등록이주민인 부모들은 불안정한 신분으로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 젖도 못 뗀 아기를 고향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곁에서 키워보려 해도 자주 아픈 아이들의 병원비,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기 위한 비용을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축복 속에서 태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사회로부터 아무런 권리도, 보호도 받지 못하고 ‘유령’처럼 살고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최선의 보호와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돌봄과 교육을 받는 데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는 이주민 차별을 금지하고 이주민의 자유와 평등과 존엄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상호이해와 존중 위에서 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서로 더 자주 더 가까이 만나고, 각자의 역량을 따로 또 같이 풍성하게 발휘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며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82활동이야기

장애 이주민을 위한 다언어 안내서

발간자료

장애이주민-다언어 안내서-최종(펼침)

62발간자료자료실

이주민 영유아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

보고서

영유아건강권실태조사_1218

64보고서자료실

[Activist Vlog ep.8] 이주민과 함께 기수하 활동가 편

활동이야기

이주민 당사자로서 이주민 입장에서 마음을 다해 지원하는 이주인권 활동가의 하루!

#브이로그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활동가 활동가의 하루 일상을 담아보다! 🏃📱⌚

올해 마지막, ‘(사)이주민과 함께’에서 활동하는 기수하 활동가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여행사에서 일하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끊긴 후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을 위해 의료 번역을 시작하며 그들의 고충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는데요, 이주민들의 노동력만 바라보는게 아닐까 하는 현재 사회에 기수하 활동가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사회일까요?

활동가를 위해 댓글로 많은 응원도 부탁드려요~

 

https://youtu.be/gytPUHmT480?si=l4SzQ7URXaaVZEFb

 

68활동이야기

[추모성명] 불안한 이주의 길을 헤쳐 나갔던, 故강태완 님을 추모합니다.

공지

1998년 1월,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몽골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성장한 강태완님이 2024년 11월 8일, 서른두 살이라는 젋은 나이에 전북 김제의 일터에서 산재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강태완님의 명복을 빌며 그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기도 군포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살아온 강태완님은 스물여덟 살이 된 2020년,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체류자격을 갖기 위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자진 출국하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재입국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법무부의 발표를 믿고 다섯 살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몽골로 자진 출국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출국 직전까지도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불안해하던 강태완님은 8개월 만에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에 있는 한 전문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하며 드디어 고대하던 체류자격을 얻었습니다. 유학(D-2) 체류자격이 적힌 외국인등록증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찍은 사진이 계속해서 생각나 마음이 아픕니다.

강태완님은 대학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을 받으면서도 한국 사회에 자신의 자리가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중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구소멸 지역에 취업하는 이주민들에게 영주(F-5) 바로 전 단계인 거주(F-2) 체류자격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영주를 따고 귀화를 해 본인도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프렙체렝 타이왕’ 대신 ‘강태완’으로 살고 싶었던 그는, 전북 김제로 향하는 또 다른 이주를 선택했습니다. 그가 지나온 모든 길은 불확실했고, 불안정했으며, 그렇기에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강태완님은 자신을 밀어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 되고자 어려운 도전을 하나씩 헤쳐 나가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증은 한국인이 소멸하고 있던 김제로 이주한 강태완님을 8개월 만에 소멸시키고 말았습니다.

강태완님의 죽음은 이주아동에서 이주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의 꿈과 도전을 응원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비통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가 선택해야 했던 그 길들은 한국에 살고있는 수많은 이주아동들, 이주청년들이 선택하게 되는 길들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결말이 우리가 함께 미래를 그리고 있는 이주아동들의 종착역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이주민들의 참사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밝혀내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별로 듣지 못합니다. 지난 6월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민이었습니다. 사고 발생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체류자격이라는 족쇄로 이주민들을 묶어놓고, 한국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는 위험하고 불안한 길을 걸어가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삶의 가능성을 막아놓는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가 만나는 이주아동들에게 마음껏 네 꿈을 펼치면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정부는 인구감소, 지역소멸, 노동력 부족을 이야기하면서, 이주민들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세금 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걷도록 한 길들이 과연 그들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길인지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주민들의 희망을 이용해 낯선 곳에서 살도록, 더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주민들이 위험한 일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를, 이주민들이 일하는 일터들이 안전하기를, 이주민들이 선택한 길들이 막다른 길이 아니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이주민들과 더불어 평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재로 사망한 뒤 20일이 지나도록 강태완님과 유가족은 회사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경찰과 노동부의 조사는 느리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산재 사망사고가 그렇듯이 결국 아무에게도 책임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는 강태완님의 산재 사망사고의 진상이 철저히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가려지고, 그에 따른 죗값을 치를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기업의 이윤보다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도록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2024년 11월 28일

이주인권연대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이주민과 함께, 아시아의 창, 울산이주민센터,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이주와 인권연구소, 지구인의 정류장, 충남이주여성상담소, 한국이주인권센터

62공지

장애 이주민 지원 모니터링

활동이야기

<이주민과 함께>는 2024년 1월부터 장애 이주민의 재활을 위해 필요한 지원과 지역사회의 지원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지만 국적과 체류자격을 이유로 장애인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주민들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어려움을 경제적, 사회관계적, 제도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하는 기획으로 바보의 나눔 공모배분 사업에 선정되어 동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경산이주노동자센터를 방문하여 아동과 양육자를 만나 면담 후 발달상황과 재활치료 계획 등을 의논한 데 이어 11월은 동두천에 있는 파주엑소더스를 방문하여 3명의 장애 이주민과 그 가족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의족을 지원한 모나씨는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새 의족에 잘 적응하고 있었고 발달장애가 있는 두 아이의 재활치료 효과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난민신청 중인 모나씨는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일을 구하지 못해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이었고, 두미사니 엄마는 아이의 치아 치료비용이 너무 비싸 고민이 깊었습니다. 렉스포드 엄마는 미등록으로 체류하다 귀국한 남편이 비자를 받고 돌아오길 기대하지만 가능성이 낮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장애 이주민에게 장애보다 더 큰 어려움이 체류와 경제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서로에 의지하며 희망을 키워가는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애 이주민의 곁을 지키는 우리의 동행은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57활동이야기

이주여성 성평등 강사양성교육 기초과정

활동이야기

이주여성 성평등 강사 양성교육이 11월 7일부터 시작하여 벌써 4번째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관광통역안내사와 다문화감수성 강사, 그리고 이중언어 강사, 통·번역사 등 이주여성 20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첫 수업으로, 젠더를 배우며 이후에는 젠더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일부일처제와 가부장제 등의 여성 지위와 역할을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친숙한 K드라마를 통해 과거 수동적인 여성에서 여성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 간의 연대 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현상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의만큼 수업 때마다 다른 문화 배경을 지닌 이주여성들이 ‘여성’이란 주제로 함께 자신의 경험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63활동이야기

< 미등록 이주민 영유아 의료비 지원사업 > 결과보고

활동이야기

김아이잔 팀장

‘2024 미등록 이주민 영유아 의료비 지원사업’이 마감되어 결과보고 정리 중입니다. 올해 본 사업으로 30명 신청하여 지원이 시급한 24명의 이주민 영유아가 정기심사를 통해 선정되어 의료비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생아 비율이 압도적이었고, 신청은 전국의 의료기관 및 이주민 지원기관에서 들어왔습니다. 전국 사업이다 보니 영유아의 거주 지역도 다양했고, 경상남도 소재 의료기관의 신청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선정된 다수의 대상자가 3차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았거나, 치료받고 있는 신생아였습니다. 신생아 11명 중 5명은 조산아, 2명은 1000g에 못 미치는 체중으로 출생한 초미숙아였습니다. 체중이 2000g을 넘어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장기간 입원함에 따라 건강보험이 없는 데다가 치료기관에서는 외국인 수가 매겨 2억원이 넘는 고액의 병원비가 발생하였습니다. 불안정한 일용직으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미등록 신분의 부모에게 병원비를 감당하기란 매우 어려웠고, 다수의 영유아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미수금을 남긴 채 퇴원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지난 10월 23일, 심사 결과 평가회 및 본 사업의 단위사업인 ‘이주민 영유아 건강권 실태조사’ 연구보고서 초안 바탕으로 합평회 개최하였습니다. 이주민과함께, 아름다운재단, 이주와 인권연구소 및 심사원들이 참석하여 의료비 지원사업의 의미, 효과성 및 지속 필요성에 대한 논의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11월 15일, 결과보고를 앞두고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에서 사업 결과 실무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회의 결과 2025년 영유아 의료비 지원사업이 확정되었습니다. 내년 사업은 4~5월에 시작할 예정이고, 올해처럼 내년에도 어마어마한 의료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유아들에게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지원 결과>

 

  1. 국적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러시아 르완다 네팔 필리핀
14 5 1 1 1 1 1 24

 

신생아 (출생 후 1개월까지) 영아 (만3세 미만) 유아 (만3세부터)
11 10 3 24

연령대

 

  1. 거주 지역
경상

남도

경기도 서울시 충청

남도

전라

북도

충청

북도

울산시 인천시 대구시 부산시
7 5 4 2 1 1 1 1 1 1 24
72활동이야기

[활동가 칼럼] 어머니의 이름으로 …이소선, 김미숙, 이은혜

활동이야기

정지숙 상임이사

92년생 강태완. ‘미등록 이주아동 호준’으로 알려진 그의 본명입니다. 타이반이라는 몽골이름이 있으나 그는 한국에서 26년을 강태완으로 살았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이어진 불안한 삶을 정리하고자 자진출국과 입국, 대학졸업의 지난한 과정을 마치고 김제의 한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인구소멸지역 취업 노동자에게 준다는 F2R 비자를 받고 비로소 편하게 숨쉬며 살게 된 지 8개월 만에 고인이 된 그의 다른 이름은 산재사망노동자입니다.

(관련기사 :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166921.html)

 

태완씨 사망 17일째 되는 일요일, 추어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미숙씨가 은혜씨에게 말을 건넵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 맛이 있어요. 맛있다고 느껴져요. 그런 제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미숙씨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피해자 고 김용균의 어머니고 은혜씨는 고 강태완의 어머니입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비정규직 철폐와 산업재해 방지, 차별없는 일터 만들기를 위해 노동운동가로 헌신하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태완의 어머니 이은혜씨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두 아들을 추억하며 간간히 미소짓다 또 눈물짓다, 편안하게 보내지 못하고 회사와, 노동자의 편이 아닌 세상과 싸워야 하는 험난한 여정에 대한 걱정과 응원의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은혜씨와 미숙씨를 바라보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님이 떠올랐습니다. 공교롭게도 태완씨의 한학기 등록금을 전태일장학금이 채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로, 다시 이주노동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성장의 과정이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투쟁의 여정이었던 태완씨였기에 그 과정을 함께한 이주인권활동가들의 충격과 비통한 마음이 큽니다.

(관련글 : https://mihu.re.kr/activities/taivan-obituary-241111/)

태완씨의 주검은 아직 차디찬 병원 냉동고에 있습니다. 진상규명과 공개사과, 재발방지 대책, 유족지원 등의 협상이 결렬되며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용균이 장례까지 꼭 62일이 걸렸어요. 싸우려면 먹어야 해요.” “다른 아이들이 태완이처럼 되어서는 안되잖아요. 나도 더 힘을 낼 겁니다” 국에 밥을 한숟가락 떠 넣으며 은혜씨가 다부지게 말했습니다. 이주민의 존재가 저출산, 지역소멸, 노동력 부족의 대안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웃으로 함께 하는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이주민과 함께>도 더 힘을 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0활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