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칼럼] 어머니의 이름으로 …이소선, 김미숙, 이은혜

활동이야기

정지숙 상임이사

92년생 강태완. ‘미등록 이주아동 호준’으로 알려진 그의 본명입니다. 타이반이라는 몽골이름이 있으나 그는 한국에서 26년을 강태완으로 살았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이어진 불안한 삶을 정리하고자 자진출국과 입국, 대학졸업의 지난한 과정을 마치고 김제의 한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인구소멸지역 취업 노동자에게 준다는 F2R 비자를 받고 비로소 편하게 숨쉬며 살게 된 지 8개월 만에 고인이 된 그의 다른 이름은 산재사망노동자입니다.

(관련기사 :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166921.html)

 

태완씨 사망 17일째 되는 일요일, 추어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미숙씨가 은혜씨에게 말을 건넵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 맛이 있어요. 맛있다고 느껴져요. 그런 제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미숙씨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피해자 고 김용균의 어머니고 은혜씨는 고 강태완의 어머니입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비정규직 철폐와 산업재해 방지, 차별없는 일터 만들기를 위해 노동운동가로 헌신하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태완의 어머니 이은혜씨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두 아들을 추억하며 간간히 미소짓다 또 눈물짓다, 편안하게 보내지 못하고 회사와, 노동자의 편이 아닌 세상과 싸워야 하는 험난한 여정에 대한 걱정과 응원의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은혜씨와 미숙씨를 바라보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님이 떠올랐습니다. 공교롭게도 태완씨의 한학기 등록금을 전태일장학금이 채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로, 다시 이주노동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성장의 과정이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투쟁의 여정이었던 태완씨였기에 그 과정을 함께한 이주인권활동가들의 충격과 비통한 마음이 큽니다.

(관련글 : https://mihu.re.kr/activities/taivan-obituary-241111/)

태완씨의 주검은 아직 차디찬 병원 냉동고에 있습니다. 진상규명과 공개사과, 재발방지 대책, 유족지원 등의 협상이 결렬되며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용균이 장례까지 꼭 62일이 걸렸어요. 싸우려면 먹어야 해요.” “다른 아이들이 태완이처럼 되어서는 안되잖아요. 나도 더 힘을 낼 겁니다” 국에 밥을 한숟가락 떠 넣으며 은혜씨가 다부지게 말했습니다. 이주민의 존재가 저출산, 지역소멸, 노동력 부족의 대안이 아니라 사람으로, 이웃으로 함께 하는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이주민과 함께>도 더 힘을 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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