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성명] 불안한 이주의 길을 헤쳐 나갔던, 故강태완 님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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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몽골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성장한 강태완님이 2024년 11월 8일, 서른두 살이라는 젋은 나이에 전북 김제의 일터에서 산재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강태완님의 명복을 빌며 그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기도 군포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살아온 강태완님은 스물여덟 살이 된 2020년,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체류자격을 갖기 위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자진 출국하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재입국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법무부의 발표를 믿고 다섯 살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몽골로 자진 출국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출국 직전까지도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불안해하던 강태완님은 8개월 만에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에 있는 한 전문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하며 드디어 고대하던 체류자격을 얻었습니다. 유학(D-2) 체류자격이 적힌 외국인등록증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찍은 사진이 계속해서 생각나 마음이 아픕니다.

강태완님은 대학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을 받으면서도 한국 사회에 자신의 자리가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중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구소멸 지역에 취업하는 이주민들에게 영주(F-5) 바로 전 단계인 거주(F-2) 체류자격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영주를 따고 귀화를 해 본인도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프렙체렝 타이왕’ 대신 ‘강태완’으로 살고 싶었던 그는, 전북 김제로 향하는 또 다른 이주를 선택했습니다. 그가 지나온 모든 길은 불확실했고, 불안정했으며, 그렇기에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강태완님은 자신을 밀어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 되고자 어려운 도전을 하나씩 헤쳐 나가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증은 한국인이 소멸하고 있던 김제로 이주한 강태완님을 8개월 만에 소멸시키고 말았습니다.

강태완님의 죽음은 이주아동에서 이주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의 꿈과 도전을 응원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비통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가 선택해야 했던 그 길들은 한국에 살고있는 수많은 이주아동들, 이주청년들이 선택하게 되는 길들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결말이 우리가 함께 미래를 그리고 있는 이주아동들의 종착역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이주민들의 참사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밝혀내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별로 듣지 못합니다. 지난 6월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민이었습니다. 사고 발생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체류자격이라는 족쇄로 이주민들을 묶어놓고, 한국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는 위험하고 불안한 길을 걸어가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삶의 가능성을 막아놓는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가 만나는 이주아동들에게 마음껏 네 꿈을 펼치면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정부는 인구감소, 지역소멸, 노동력 부족을 이야기하면서, 이주민들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세금 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걷도록 한 길들이 과연 그들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길인지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주민들의 희망을 이용해 낯선 곳에서 살도록, 더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주민들이 위험한 일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를, 이주민들이 일하는 일터들이 안전하기를, 이주민들이 선택한 길들이 막다른 길이 아니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이주민들과 더불어 평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재로 사망한 뒤 20일이 지나도록 강태완님과 유가족은 회사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경찰과 노동부의 조사는 느리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산재 사망사고가 그렇듯이 결국 아무에게도 책임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는 강태완님의 산재 사망사고의 진상이 철저히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가려지고, 그에 따른 죗값을 치를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기업의 이윤보다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도록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2024년 11월 28일

이주인권연대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이주민과 함께, 아시아의 창, 울산이주민센터,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이주와 인권연구소, 지구인의 정류장, 충남이주여성상담소, 한국이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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