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준 이사장
8월 17일 전국에서 약 100여대의 희망버스가 출발하여, 55일이 지난 아리셀 화재참사의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불과 몇십초만에 23명의 생명, 18명의 이주민들의 목숨을 삼켜버린 화염처럼 비틀어진 공장이 보이고, 그 입구에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영정속 사진은 너무 어리고, 너무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정속에는 불법 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형참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08년 이천코리아냉동 물류창고 화재로 40명이 사망했습니다. 절반이상이 임시노동자이고, 13명은 이주노동자였습니다. 2020년 4월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설현장 38명 사망자 대다수가 하청노동자였습니다. 대형참사의 희생자는 점점 한국의 수직적 노동계층의 반지하, 불안정한 노동계층 비정규직 여성 이주민이 대다수이며, 이번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글을 쓰며 최근 두 개의 신문기사를 주목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참사 하루전 “이주노동자 목숨값 차별, 한국인 노동자의 산재사망보상금의 1/3에 못미친다”는 칼럼이었고, 하나는 참사후 6월 30일 중대재해법시행후의 1심판결문을 전수분석한 “임금노동자의 3.24%인 이주노동자(92만 3000명), 중대재해 사건에선 ‘11%를 기록, 50인 미만 확대시 그 숫자는 더 증가”라는 기사입니다. ‘목숨값이 1/3밖에 되지 않고, 사망률은 내국인에 비해 3배가량 높다’는 이 두기사를 보며, 이주노동자가 한국의 자본주의에 가성비 좋은 경제적 도구로 쓰임을 당하고 버려지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1967년 막스 프리샴은 “우리가 바란 것은 일손이었는데, 대신 인간들이 왔다”고 했습니다. 한국사회에도 1991년 이주노동자가 온 이후 33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사람이 아닌 노동력, 경제적 도구로 여기고 있음을 이번 참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왜 지난 3년간 4번의 폭발이 있었고, 이틀전에도 화재가 난 위험한 일터를 방치했는가” “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왜 이렇게 많은 이주노동자가 죽었는가” 희망버스 추모행사에서 유가족을 비롯해 참가한 사람들은 묻습니다.
폭발과 발화의 위험한 일터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성평가 우수작업장으로 선정한 정부, 위험한 작업장 제조업무에 불법파견된 비정규직노동자 파견법, 충분한 언어소통과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 F4비자 운운하며 단순노무 위법이라며 회유협박하며 합의하려는 기업, 비상구의 적재된 완성품과 발화를 촉발하는 일반소화기, 탈출로 안전의식등 정부,법,제도,기업, 안전의 문제는 이 화재가 *사회적참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마저도 싸고 부담이 적은 가성비 좋은 노동만을 찾고, 위험한 노동현장에 그들을 도구적, 일회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기업, 노동구조가 바로, 산업현장의 대형참사를 일으키고, 이주노동자등 불안정한 노동자들을 죽게하는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의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이주화로 인한 대형참사를 막아야 합니다.
8월 17일 아리셀 희망버스 대표단의 요구사항입니다.
1 박승관대표 즉각 구속하라
2 아리셀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
3 이주노동자 죽지않는 대책 수립하라
4 위장도급 불법파견 강력하게 처벌하라
5 죽지 않고 일할 권리 투쟁으로 쟁취하자
(이 마지막 요구사항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투쟁으로 쟁취하여야할 조건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리셀 공장 앞 파란 추모리본에는 누군가가 “누구나 안전하게 일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라고 적어 두었고, 한 이주노조 대표는 “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요구하고 싶다. 위험한 사업장에서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요구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고 외쳤습니다.
저는 절박한 마음으로 희망버스에 탑승했습니다.
한국사회는 현재 230만명이상의 이주민이 살고 있으며, 곧 5%의 이민사회로 진입할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을 하위 계층으로 공고히 하여 더 불평등한 사회로 갈지, 다양성을 존중하며 차별을 없애며,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 갈지의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생각합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희생을 낳은 아리셀 화재참사는 그 중요한 분기점되어야 합니다. 슬픔에서 희망을 만들어야할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참사로 숨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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